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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7) 하늘 나라의 계획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7.08  조회 1695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7) 하늘 나라의 계획
발행일 : 2015-07-05 [제295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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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나라의 하느님께서 무슨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대목 또한 본래의 영신수련 책에 의하면 둘째 주간의 들머리 즉 '그리스도의 나라' 묵상에 이어 나오고 있는 부분인데 '두 개의 깃발 묵상'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뒤로 뺐습니다.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중심으로 하늘나라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들음으로써 앞에서 봤던 영들의 전쟁이 그저 단순히 이 땅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님을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땅의 모든 것은 하늘과 연계되어 존재하고 일어나는 것임을 봐야 합니다.


먼저 볼 것은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이 지구를 내려다보시며 무슨 상념에 잠기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구를 내려다보시는 모습입니다. 너무나 많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으며 너무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는 사람도 있고, 평화 중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싸움이나 전쟁 중에 있는 사람도 있고,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픔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광경을 보시며 하느님께서는 깊은 슬픔에 잠기십니다.

예,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도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 등을 통해 이 지구 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안타깝고 처참한 일들이 쉼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보고 알아듣고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죽으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징벌을 가해 지옥으로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사랑이신 하느님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심판과 벌에 의해 지옥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지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자기 인생을 통해 사랑과 진리를 몸에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이 자기에 닿으면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그 사랑과 진리를 피해 달아나고자 하고, 그렇게 달아난 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조심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런 지옥에 간 사람이 살아생전에 무슨 흉악한 범죄나 저지른 저질의 사람들인 양 알아들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자기(에고) 중심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이웃 사랑에 눈멀어 있었던 사람들과, 세속적 가치가 아닌 참된 진리 중심의 가치에 등을 돌렸던 이들이 제 발로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상황을 방치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올바른 진리와 사랑을 보여 주시며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모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여느 사람들과 똑같은 행로를 밟으심으로써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에고 중심의 미움과 허위로부터 벗어나 주님 중심의 사랑과 진리에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 주시며 열어 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낡은 육의 관점에 찌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영의 새 관점을 제시하시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린 육의 관점에 매인 가운데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었던 존재들이 구원받아 하늘나라로 옮겨지고 해방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느님의 이런 계획에 수태 고지 사건을 통한 성모님 봉헌은 참으로 귀중했습니다. 성모님의 자기를 비운 이 봉헌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모델로 자리하게 됩니다. 과연 영신수련의 남은 여정을 통해 우리는 성모님을 본받아 자신의 봉헌을 완성시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시작된 봉헌은 점점 깊어져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출처: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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