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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5)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6.23  조회 1606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5)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
발행일 : 2015-06-21 [제294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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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난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절정 체험이라면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 사랑의 절정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것을 내걸지도 않으시고 새로운 힘을 내어야만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시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와 꿈을 심어 주십니다. 그렇게 사랑을 하시고, 그 사랑을 통해 사람들은 생명에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까지 여러 번 제자들에게 발현하심으로써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펼쳐 나가시는 가운데 제자들을 영적 차원에로 이끄시고 영적 눈을 뜨게끔 교육시키고 계십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예수님의 수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겪으면서 아직 영적 눈이 제대로 뜨이지 못하고 육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슬픔의 눈물, 열 한 제자들이 사로잡혀 있던 두려움, 무지와 의혹 속에서 번민하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일상의 무기력과 허기에 지쳐 있던 티베리아스 호숫가의 일곱 제자들의 모습이 한결같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황을 영적 차원에서 읽어들이지 못하고 인간적이고 육적인 차원에 머물며 슬퍼하고 낙담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은 철저히 영적 눈으로 읽어들이시며 영적 차원에 머물며 행동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조건 없는 사랑도 가능했습니다. 제자들이 보여 주고 있는 슬픔이나 무기력 그리고 두려움 같은 것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며 인간적인 눈으로 읽어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영의 차원으로 즉 악신의 책동으로 읽어들이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만 그런 영들의 움직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인간적 슬픔이나 아픔 내지 두려움들로만 알아듣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럴 것입니다. 제자들이 인간적 차원에 머물며 온갖 어려움과 방황을 겪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을 오직 인간 차원에서, 육적 차원에서만 알아듣고 받아들이고 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너무나 큽니다. 그러는 가운데 인생에서 오는 갖은 백팔번뇌를 다 겪으면서 말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이, 주님이 빠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부귀 영화를 다 누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생명을 잃어 버렸는데 말입니다.

부활이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인간적이고 육적인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에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 없는 삶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에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삶의 모든 장면 장면들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알아들으며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깊은 맛이 느껴집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주님의 사랑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게 느껴집니까?

부활 체험을 한 제자들의 오직 한 가지 공통점은 '주님'을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부활 체험을 한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오직 한 가지 목표는 우리 삶 전체에서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 홀로 계심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 눈이 뜨인 것이 영적 차원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며 혹 사랑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내려오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사랑을 베푸는 이도 우쭐거리며 자기 만족에 떨어지지 않고 사랑을 받는 이도 공연히 주눅들며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이 바로 우리가 현세에서 살아내야 할 사랑입니다. 영적 차원의 눈이 뜨이는 가운데 육적 차원에 머물지 않으면서 펼쳐내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인간적인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상대를 구속하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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