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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9>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1.30  조회 1595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9>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2015. 02. 01발행 [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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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시스티나성당에서 강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세상에는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덕성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칭송들이다. 하나같이 교훈적이다. 친구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과 의리에 관한 에피소드, 난세에 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용덕과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부정과 부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봉사 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 등. 세상을 밝혀주고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도덕적인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사제들의 강론에 예화로 많이 등장한다.

 

진리는 훼손되서는 안돼

가끔, 좋은 강론을 들었다는 신자에게 그 내용을 물을 때가 있다. 이때 상당히 많은 이들이 복음 선포의 핵심 내용보다는 예화나 도덕적 가르침만을 기억하여 답변하는 것을 들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부수적인 것과 동일시됐거나 왜곡됐다는 것이다. 아주 쉽게,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교황은 이를 경계시킨다. “그 부수적인 측면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스도 메시지의 핵심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34항).

물론 사제들은 예화를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와 연결하여 설명하였겠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할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때론 강론이 교회법 규정이나 사회의 미담을 전해주는 것으로 끝나버릴 때도 있다. 도덕 교사의 강단의 가르침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강론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교황은 선교 사목을 할 때, 수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끈질기게 강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35항). 제일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선포의 내용은 본질적인 것에, 곧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매력적이면서 가장 필수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깊이와 진리가 훼손되지 않은 단순한 메시지일수록, 더욱 설득력 있고 빛나게 됩니다”(35항).

다시 말해, 핵심 메시지가 부각되고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몇 가지 신앙 교리나 도덕적 가르침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전달되어야 할 그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의 아름다움”이다.

 

자비, 도덕적 가르침의 으뜸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인용하면서, 계속해서 부연 설명을 한다. 신앙 교리는 물론 도덕적 가르침을 포함한 교회의 가르침 전체에는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니 핵심 메시지를 잘 드러내는 상위 서열의 신앙 진리와 도덕적 가르침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라는 권고이다.

그러면 최상의 도덕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교황의 강론과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자비'에 대한 표현이 유난히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강조한 것처럼, '자비'는 그 자체로 가장 큰 덕이기 때문이다(37항).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 가운데 최상위의 덕이 '자비'이기에, 이를 통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의 결정적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무상으로 주어진 '선물'로 설명했다(로마 9,23; 에페 2,4).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하느님,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슬픔에 지친 자들의 위로자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길 원하신다(루카 3,6). 그 하느님은 당신 외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져야 한다”(루카 6,36)고 말했다. 이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지녀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황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37항).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구조적 가난을 없애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도록 힘쓰는 교회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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