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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 중증중복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동트는 마을'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4.12.29  조회 1589     

[신년 르포] 중증중복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동트는 마을'

장애 딛고 재능 나누는 행복 동터오는 새해 밝은 희망
마을의 자랑 '밴드 라우다떼'
절대음감 소유자 등 '달인' 천지
매달 인근 본당 미사 반주 봉사
지역 주민 찾아가는 연주회도
'인간 평등·존엄성 존중' 모토로 교육과 다양한 예능활동 진행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 꿈꿔
발행일 : 2015-01-01 [제2925호, 7면]

온 세상이 '겨울왕국'으로 변해버렸다. 연일 체감 온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맹추위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눈과 비가 얼어 도로는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한다. 자칫 방심하면 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이다.

전국을 겨울왕국으로 만든 한파는 경기도 연천군의 작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중증중복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동트는 마을'(원장 위순엽 수녀)에도 불어 닥쳤다. 하지만 동장군의 기세가 아무리 매섭다고 하더라도 동트는 마을 장애인들의 희망까지는 얼리지 못했다.



재능을 나눕니다

동지를 하루 앞둔 동트는 마을은 고요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얼마 전 조경공사를 마친 앞마당에서는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지나 동트는 마을의 문을 두들겼다.

문을 지나 만난 동트는 마을의 세상은 포근했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과는 전혀 달랐다. 장애인들의 따뜻한 겨울을 책임지는 보일러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 장애인과 수녀들의 사랑스러운 미소 앞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기세등등하던 동장군도 맥을 추리지 못했다.

수녀의 안내를 받아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교육관으로 향했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동트는 마을의 자랑인 밴드 라우라떼가 한창 연습 중이었다. 보컬이자 키보드를 맡은 조용섭(요셉)씨가 시원한 목소리로 조용필의 '바운스'를 불렀다. 가사말처럼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렸다. 거기에 이현석(프란치스코)씨의 드럼과 윤민상(세례자 요한)씨의 콩가 연주가 흥을 돋웠다.

밴드 연습을 참관하던 장애인도 신이 났는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거나 환호를 보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앙코르”라는 소리가 절로 났다. 시각장애인인 세 사람이 악보도 없이 너무나 완벽한 연주와 찰떡호흡을 보여준 덕분이었다.

다재다능한 용섭씨와 현석씨, 민상씨는 밴드 외에도 사물놀이패 '품은해'에서 각각 상쇠와 장구, 북을 담당한다. 세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듣고 또 들으면서 연습했고 마음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합을 맞췄다. 그 결과, 음악과 관련해서는 달인이 됐다.

동트는 마을에는 음악의 달인이 또 한 명 있다.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박세인(루카)씨가 그 주인공이다. 수녀의 요청에 성가와 캐럴, 가요 등을 막힘없이 피아노로 연주해 냈다. 악보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음악을 들으면 바로 연주해내는 것이 세인씨의 특기다. 악보를 보고도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기자에게 시각장애인인 세인씨의 재능은 놀랄 '노'자였다. 오래전 장애인 구연동화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 있는 정일호(다미아노)씨도 앉은 자리에서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술술 들려줬다. 혹부리 영감 외에도 일호씨의 레퍼토리는 네 개나 더 있다.

동트는 마을은 정말 달인 천지다. 취미나 특기 하나 없는 비장애인들보다 더 특별하고 빛나는 재능을 가진 장애인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들이 더욱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때문이다. 밴드 라우라떼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의정부교구 전곡본당(주임 김규봉 신부)에서 젊은이미사 반주 봉사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지역주민들을 찾아가 연주를 한다. 또 세인씨는 피아노 치는 일이라면 언제나 앞장서고, 일호씨는 구연동화로 동트는 마을을 찾아오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동트는 마을 개원 당시부터 이곳에서 생활해 온 용섭씨는 “12년 넘는 세월 동안 쌓아둔 추억이 전부 떠오른다”면서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내 재능을 나눴을 때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희망이 떠오릅니다

2014년 경기도 장애인복지시설 재활프로그램 평가발표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동트는 마을의 모토는 '인간 평등과 존엄성 존중'이다. 생활 장애인들이 일반인과 똑같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5명의 수녀와 20여 명의 직원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별히 교육에 대한 수녀들의 열정은 '강남 엄마' 못지않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특수학교 등하교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재택교실까지 마련했다. 덕분에 생활 장애인 중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갖고 있으며, 특수학교 전문반에 진학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동트는 마을에서는 교육 외에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월요일에는 밴드 연습, 화요일에는 풍물패 연습, 수요일에는 태권도 수업이 진행된다. 목요일에는 구연동화, 토요일에는 노래교실이 열린다. 문화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신작 영화가 개봉되면 생활 장애인들과 함께 관람하고, 지난해부터는 캠핑도 떠나고 있다.

원장 위순엽 수녀(프란치스코전교봉사수녀회)는 “장담하건대 동트는 마을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우리 수녀들보다 삶의 질이 높다”고 웃으며 말했다.

위 수녀는 이어 “복지는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단순히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기본권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새해에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 동트는 마을 생활 장애인들과 수녀들 모습.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
출처: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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